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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나고 싶어~~!!! 기타


                              이제사 돌아보니
내 주위에 보이지 않은  이상한 그무엇이 존제 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내 삶의 전부인것 같은 것,
      내 삶의 이상을 실현 시키는 것.
          그리고 내 행복의 세계를 완성 시켜 주는것.
     그리고 내 삶의 즐거움을 주는것.
마지막에 나의 입가에 늘 미소를 띄게 해 주는것
그것이 뭐냐 하면 내 가족이고
  내 반려자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날 둘려싸고 공포와 억압과 슬픔을 준다는것
        왜?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결과물이~~!
   그리고 찰거머니 같은 악마와 사탄같은 것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달이다.
       세계 어디에도 나 같은 등신과 바보가 없다고 항변하듯이
     아전투구로 달려드는 저 악마를 떨쳐 버릴수 잆다
  결국 난 법의 힘을 빌릴 입장에 왔다.
난 후회없다.
  20년의 길다면 긴 세월인데
    단 한번도 내것이 된적 없는 그것을 떼어버릴려고 난 죽기살기다

저런 간악한 사탄도 존재 한단 말인가.
양의 탈이 아닌 천사의 탈을 쓴
저 악마가 날 잡고 죽기살기로 달려든다.
나에게
  가족에게
    얼마나 더 큰죄를 안길려고
         물귀신같이 날 붙잡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악발를 부린다.
    편하기 살기위해
날 허수아비로 만들면서 아직도 저 남자들 속에서 기쁨의 나락으로 빠져 들고싶어
   날  붙잡려고 안달이다.
    너
     너
      너는 누구냐?
         인간이냐
       악마냐
   사탄이냐,
귀신이냐.
  난 너를 저주한다
    이 생에서 지금은 이러더라도
      다음 생에 태어나면 너와 관계된 그 숱한 남자와
        너의 가족에게 씨를 멸할 것이다.
            나의 입가의 웃음대신
             내 눈의 뜨거운 눈물을  흐르듯이
           너희들의 후의 인생에 뜨거운 피가 강물처럼 흐르게 할 것이다.
       나의 이 한 맺힌 절규은 너의 쾌락의 웃음속에 잠들지만
   나의 한은 그 쾌락을 먹고 자랄 것이다
 난  그 뚜꺼운 검은 허울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유로운  믿음과 행복이 넘치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


이상적인 결혼 연령은 40세...왜냐고? 건강

[오마이뉴스 한경미 기자]

나이에 대한 개념은 동서양이 상이하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은 아이가 태어나면 벌써 한 살을 먹는다. 12월 31일 태어난 아기는 하루 만에 2살이 된다. 서양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다들 뒤로 넘어간다. 서양은 아이가 태어난 날로 정확히 1년이 지나야 한 살을 먹는다. 자기 생일에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서양인에 비해 설날에 모든 국민이 동일하게 나이 한 살을 먹는 한국인, 그 일률성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엄마 뱃속에 있었던 9개월(한국에서는 10개월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9개월이라고 한다)을 감안해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 한국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고 서양 사람들도 이 논리에는 전반적으로 수긍을 한다.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한국인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 위계 질서가 확실히 잡힌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 많을수록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 태어나면서부터 한 살이 되고 자기 생일을 기다릴 시간 여유 없이 다음 해 설날이 되면 재빨리 한 살을 더 먹는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린이 -> 청소년 -> 성인 -> 노인이라는 4단계를 겪게 된다. 나이가 많아야 대접을 받는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 시절까지 나이를 부풀려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양에서는 이렇지 않다. 어린 아이들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면 3살 반이라고 정확하게 나이를 댄다. 한국처럼 뭉뚱그려서 5살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나이에 따라 인간 관계가 성립되는 한국과 달리 친구 관계나 동료 관계에서 상대방의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자가 알고 있는 프랑스 친구 중에서 나이를 아는 친구가 반이고 모르는 친구가 반 정도 될까. 기회가 되어서 나이 얘기가 나와야 상대방의 나이를 알게 되는 정도다. 그런데 항상 나이를 먼저 알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한국인의 심리가 아직도 남아 있어 속으로 저 친구 나이가 몇 살일까 생각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나중에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많거나 적어서 놀라기도 하는데 그 놀라움 또한 재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친구 관계가 동갑이거나 한 두 살 차이 나야 성립하는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20년 심지어 30년 나이 차이가 나도 친구 관계가 성립한다. 남편 친구 중에는 남편보다 10-17살이 적거나 17살이 많은 친구들이 있다. 제일 젊은 친구와 늙은 친구 간에 34년 나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한국 같으면 부모뻘이 되거나 선후배일 것이다. 그런데 불어에는 선후배라는 단어도 없다. 


연령층 속성에 대한 흥미있는 사실


어느 일요일 오후 파리 19구 시청에서 열린 피아노, 첼로 듀엣 무료 연주에 대거 참여한 프랑스 노인들
ⓒ 한경미


프랑스는 노령 인구가 많은 선진국이다. 프랑스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가 77.8세, 여자가 84.5세다. 의학의 발달로 점점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이고 노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프랑스 여론 조사 기관인 '입소스'(Ipsos)가 조사에 나섰다.


입소스는 고령 사회에서 노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작년 10월에 '장년층 관상대'(L'Obervatoire de la Maturite)라는 새 기관을 창설하였다. 이 기관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의 노인의 삶을 관찰하고, 변화하는 노인의 역할을 모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 첫 임무로 이 기관은 작년 여름에 나이와 관련된 설문 조사를 했는데 대상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미국, 중국, 일본 등 8개 선진국으로 이들 국민 중 25세에서 75세까지의 인물을 선정하여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결론을 얻었다.


-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나이는 27세


프랑스인이든,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설문에 응한 이들의 대부분이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나이를 27세로 잡았다. 이들에 의하면 장년기로 들어서는 나이는 40세, 노년기의 초기는 69세로 보고 있다. 학업 연수가 점점 길어지는 오늘날 직업을 갖는 나이도 당연히 늦어지고 있는데 성인의 개념은 경제적인 독립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성립된다.


40세 주변에 이루어지는 장년기는 그동안 바라왔던 꿈이나 비현실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단계다. 현재의 내가 아닌 좀 더 나은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던 환상을 깨고 심리적인 독립을 추구하는, 어떻게 보면 슬픈 나이가 바로 장년기라 할 수 있다.


- 성인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는 존재


27세에서 40세에 해당하는 성인은 1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는 나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스타일, 삶, 위치 등을 찾기 위해 이것 저것 사들이고 문화, 사회, 정치, 스포츠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존재로 소비의 핵심층이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제공하는 온갖 물질과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장년층은 소비생활에서 멀어지는 층


장년층은 이와는 반대다. 이미 자신의 동질성을 찾은 이들은 소비보다는 안정을 원한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좋은 고객이 아니다. 이들에게 좀 더 활발한 소비의욕을 주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가 발견한 것이 있다. 젊음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이미 불혹을 넘긴 이들에게 더 젊어지라고 수없이 강조한다. 젊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에서  주름 방지나 제거 화장품, 보톡스 수술, 젊어 보이는 케주얼 스타일의 의복, 신발, 가방 등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젊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포츠에 매달리기도 한다.


- 이상적인 결혼 연령은 40세


27세에서 40세까지의 성인 기간에 이혼이 가장 많다. 자신의 동일성을 찾지도 못한 상태에서 짝을 찾아 가정을 형성했으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동일성을 찾고 자신과 지속적이며 성숙한 관계를 맺는 자만이 타인과도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40세에 결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결국 결혼을 늦게 할수록 이혼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말인데 만혼이 행복한 커플을 낳는다는 말이다. 


- 노년기의 시작은 평균 69세


노년기는 두 가지 시기로 구분된다. 첫번째 시기는 55세 경으로 이 때부터 내 일 같지 않았던 죽음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나이는 육체적으로는 아직 건강을 유지하나 정신적으로 서서히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므로 자식에게 자신이 보유한 가치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두번째 노년기는 65세 경에 일어나는데 이 때부터는 건강이 삶의 중요 문제로 대두된다. 정기적으로 건강 진단을 받게 되는 것도 이 때부터이다.


- 가장 성공한 장년기를 보여주는 연예인은 조지 클루니


조지 클루니


세계 연예인 중에서 가장 잘 늙은 자로 8개국 조사자들이 선택한 배우가 50세의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다. 다음으로 81세의 숀 커너리, 77세의 소피아 로렌, 53세의 샤론 스톤, 64세의 제인 폰다 순이다.


프랑스 연예인으로는 87세 가수 샤를르 아즈나브, 83세 배우이자 가수인 린느 흐노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장점으로 나이에도 불구하고 계속 활동을 한다. 여기서 잘 늙는다는 것은 젊어지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고 나이를 인정하되 대신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다.


- 젊게 산다는 것은 나이에 상관 없이 미래의 계획을 갖는다는 것


여행가 알렉상드라 다비드 넬 (1868-1969)


이런 점에서 젊은이들 중에서 이미 늙은이처럼 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50대 후반이나 60대 초에 신규 운전 면허를 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70대 노인들이 새로운 짝을 찾아 재결합을 하기도 하는데 아무도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서양 여자로서 드물게 티베트를 혼자 여행한 유명 여행가 알렉상드라 다비드 넬은 101살까지 살았는데 죽기 6개월 전인100.5살에 여권을 갱신하기도 했다. 죽기까지 여행 계획을 세우고 살았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노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선진 사회다.





의성 빙산사지5층석탑, 국보였다가 보물된 이유-내 고향 의성에도 이런 보물이 있는 줄 생활 지혜

[오마이뉴스 정만진 기자]
5층석탑. 의성탑리5층석탑을 본떠 만든 모전석탑이다.
ⓒ 정만진



보물 ― 건물, 서적, 회화, 조각, 공예품, 무구(巫具)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가리킨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보물은 유형(有形)문화재 중에서 더욱 중요한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연극, 무용, 음악, 공예기술 등은 실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체가 없다. 그러나 그들도 너무나 소중한 문화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런 것들 중 가치가 뛰어난 것을 무형(無形)문화재로 지정한다.

그러므로 유형문화재는 건축물, 서적, 그림, 조각, 공예품 등 손으로 그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재들을 말한다. 그 중에서 더욱 가치가 뛰어난 것을 국가가 지정하는 '보물'이라 하고, 나머지 유형문화재들은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가 지정하는 '유형문화재'라 한다.

빙계사터 5층석탑. 국가지정 '보물'이다.
ⓒ 정만진



잠깐, 여기서 하나 확인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문화재의 번호 문제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국보 70호인 훈민정음보다 더 뛰어난 문화재인가?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이 보물 55호인 안동 봉정사 대웅전보다 더 우수한 문화재인가? (봉정사 대웅전은 2009년 6월 30일 국보 311호로 승격된다.) 천연기념물 제 1호인 대구 도동 측백수림이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보다 꼭 보존 가치가 더 높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1호들의 가치를 낮춰 말하는 것은 아니고, 문화재들은 한번 지정하고 나면 그 이후에 등급이 오르거나 내리는 등 변할 수도 있고, 새로 발견되어 추가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1호, 2호 등 앞 번호가 붙을 수는 없다. 즉, 문화재의 번호는 가치의 순서를 매긴 것이 아니라 관리의 필요 때문에 붙였을 뿐이다.

의성에는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 4점 있다. 번호 순서대로 말하면 188호인 단촌면 관덕동의 3층석탑, 246호인 고운사 석조 석가여래 좌상, 327호인 빙산사터의 5층석탑, 임진왜란 관련 기록인 880호 <정만록>이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 문화재의 번호는 별 의미가 없다고 언급하였다. 즉, 의성의 '보물'들을 번호순으로 살펴본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뜻에서, '의성의 보물' 중에서 빙산사터의 5층석탑부터 살펴볼까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빙산사지 5층석탑이 탑리 5층석탑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국보인 탑리5층석탑의 안내판을 꼼꼼하게 학습하였으므로, 이어서 그의 '동생'인 빙산사지 5층석탑으로 순서를 잡는 것이 논리의 흐름상 적절하다는 말이다.



의성빙산사지5층석탑
보물 327호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 70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말, 고려 초의 5층석탑으로 높이는 8.15m이다. 한 변이 4.06m인 지대석과 단층 기단 위에 모전석탑(模塼石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규모가 작고 부분적으로 생략된 곳이 있어 의성탑리5층석탑을 그 모범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빙산사(氷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주변에는 석축과 주춧돌, 그리고 기와 조각들이 남아 있다. 탑의 정북쪽에 50평 규모의 금당(金堂)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 태종 6년(1406)에 왕명으로 절을 폐사시켰다고 한다.
탑 전체의 파손 상태가 심하여 1973년 완전 해체, 복원하였는데, 그 때에 3층 지붕돌 속에서 금동사리 장치가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탑리5층석탑(왼쪽)과 빙산사터 5층석탑을 비교해 보자.
ⓒ 정만진


빙산사지(址) 5층석탑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의 내용이다. 탑리5층석탑의 안내판을 읽으면서 자세히 '공부'를 한 답사자는, 같은 모전석탑 앞에 섰으므로 이번에는 내용을 알아보기가 처음보다 쉽다.

빙산사지 5층석탑은 탑리5층석탑을 본떠서 만든 모전석탑이다. 본래 탑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빙산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태종이 폐사(廢寺), 즉 없애버렸다. 그래서 '빙산사 5층석탑'이 아니라 '빙산사지 5층석탑'이 된 것이다.



안내판의 설명 그대로, 빙산사지 5층석탑을 찾아가보면 탑의 뒤쪽에 넓은 빈터가 있다. 빙산사라는 절의 금당(金堂)이 있던 자리이다. 사찰의 본채를 금당이라 부르는 것은 그 곳이 금(金)빛 부처를 모시는 집[堂]이기 때문이다.       

답사자가 그냥 눈으로 무심코 볼 때에는 이 탑도 탑리5층석탑에 못지않게 말끔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국가 지정 보물로 인정을 받아 영광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탑리5층석탑처럼 국보가 되지는 못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빙계계곡의 풍경
ⓒ 정만진



이 탑은 탑리5층석탑을 본떠서 만들었으므로 그에 비하면 뒷날의 건축물이다.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까닭에 국보가 되기에는 모전전탑 1호인 경주 분황사탑이나 2호인 탑리5층석탑에 비해 세월의 무게가 얕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탑리5층석탑에 비해 돌을 다룬 솜씨가 거칠고, 1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기울기가 너무 빨라서 웅장한 맛이 덜하다. 게다가 안내판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부서진 상태가 너무 심하여 복원을 했기 때문에 탑리5층석탑만큼 원형이 곱게 보존되지를 못했다.

본래 이 탑도 국보였다. <경상북도 문화재대관>에 따르면 1958년 8월 31일 정부가 국보를 지정할 때 이 탑도 581호 국보로 뽑혔다. 그러나 1963년 10월 1일 다시 보물 327호로 재지정을 받았다. 파손 상태가 심해서 그렇게 국보에서 보물로 한 등급 낮춰진 것이겠지만, 이는 빙산사지 5층석탑도 국보급 문화재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해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탑리5층석탑에도 있지만 이 탑에도 감실이 있다. 감실(龕室)은 탑 안에 작은 방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는 장소로 쓰는 공간인데, 두 탑 모두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감실이 크지는 않다. 사람들은 비와 바람, 눈과 서리로부터 부처를 보호하기 위해 탑에 작은 방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앞에 엎드려 소원을 빌고 세상의 평화와 안녕을 간절히 바랐다.

빙계계곡의 빙혈 입구. 5층석탑 뒤편에 있다.
ⓒ 정만진



감실 속 부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물론 두 손을 모아 비는 중생의 얼굴과 손, 그리고 그의 정수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빙산사지 5층석탑이 가진 미덕 하나가 여기에 있다. 탑의 위치 말이다. 경상북도가 자랑하는 절경 중의 한 곳인 빙계계곡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절묘한 장소에 절을 짓고 탑을 세웠으니, 감실 안의 작은 부처는 사시사철 언제나 시원한 풍광을 즐기며 한결같은 미소를 지었으리라. 그렇잖아도 한여름에도 얼음바람이 부는 빙혈(氷穴) 앞에 위치한 석탑이지만, 그토록 가슴이 탁 터지는 자연의 혜택을 누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평안하고 온화하였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 빙산사지 5층석탑의 감실 안에는 부처가 없다. 작은 금동불(金銅佛)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가져가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불상 아래에 깔았던 자리뿐이다. 탑 안 작은 방에 모신 부처가 앉아있던 자리― 감실불좌대(龕室佛座臺)는 현재 빙혈 출입구 길목의 왼쪽 산비탈에 고이 모셔져 있다. 감실불좌대 아래에 적혀 있는 짧은 안내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다.

3층석탑 감실 안에 있던 부처님 좌대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위에 있던 금동불을 훔쳐가고 버려둔 것을 이곳에 보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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