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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김씨 (金寧金氏)본관 및 시조의 유래-6 Family trees(족보)

김녕김씨(金寧金氏)
백촌 김문기(金文起) ? ∼ 1456 (세조 1)
-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伯村), 시호는 충의(忠毅).
김녕 김씨(金寧金氏)의 시조(始祖)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난을 평정(平定)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졌으며, 명종(明宗) 때에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평하는 데 공(功)을 세워 식읍(食邑)을 하사(下賜) 받고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김녕(金寧)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고려말에 지명(地名)이 김해(金海)로 개칭되다 김해로 칭관(稱貫)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로왕(首露王)계통의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혼돈되므로 김해 김씨를 선김(先金)으로,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후김(後金)으로 칭하다가 1865년(고종 2) 왕명(王命)에 의하여 김녕(金寧)으로 확정(確定)하였다.
고려말기부터 충절(忠節)로 가통(加統)을 이은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시조(始祖) 시흥(始興)의 증손(曾孫) 중원(重源)이 고려조(高麗朝)에서 안렴사(按廉使)를 거쳐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지내고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증직(贈職)되었다. 특히 그는 고려가 망하자 개탄하여 단식을 하다가 순절(殉節)하였다.
공양왕(恭讓王)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광저(光儲 : 중우너의 손자)는 무록산(武鹿山)에 들어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절의(節義)를 지켰는데, 태종(太宗)이 이조 판서(吏曹判書)의 벼슬을 내려 그를 회유하려 했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한편 광저(光儲)의 아들 순(順)도 고려때 호보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으나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다 벼슬에서 물러나 호(護)를 퇴휴당(退休堂)이라 하고 충북(忠北) 옥천(沃川)의 백지리(白池里)에 정자(亭子)를 짓고 망국의 한을 달랬으며, 분성군(盆城君) 정갑(挺甲)의 아들 질(秩)은 태조(太祖)가 등극전의 정의(情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하고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임명되었으나 불응(不應)하고아산(牙山) 도고산(道高山)에 은거(隱居)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자호(自號)를 송암(松菴)이라 하였다.
이렇게 충절의 가맥(家脈)을 이어온 김녕 김씨는 이조 판서(吏曹判書) 관(觀 : 시조의 8세손)의 아들 문기(文起)가 더욱 빛냈다.
그는 1399년(정종 1) 2월 16일 충북(忠北)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백지리(白池里)에서 출생하여 세종(世宗)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임명되어 「태종실록(太宗實錄)」을 편찬했으며,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내외종간(內外從間)인 박팽년(朴彭年) 등과 더물어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했다가 1456년(세조 2) 6월 8일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순절했다.
거창(居昌)과 양지 현감(陽知縣監)을 거쳐 영월 군수(寧越郡守)를 역임한 현석(玄錫)도 아버지인 문기(文起)를 따라 순절하였고, 문기의 손자 충주(忠柱)와 증손 현남(玄南) 현손(玄孫) 약전(約前) 등이 모두 충효(忠孝)로 가문(家門)을 빛내어 <5세충효(五世忠孝)>의 정문(旌閭)이 세워졌다.
한편 준(遵 : 시조의 10세손)은 천문(天文)·지리(地理)와 실학(實學)에 능통한 인물로 단종(端宗)이 죽임을 당하자 3년간 복상을 한 후 벼슬을 버리고 전남(全南) 고흥(高興)으로 내려가 학문(學問)에만 전념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판서(判書) 복룡(福龍)의 아들 응수(應壽)가 형제들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전공을 세우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랐으며, 담양 부사(潭陽府使) 언공(彦恭)은 권 율(權 慄)의 영천(永川) 전투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노량대첩(露梁大捷)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 명성을 떨쳤다.
노모(老母)를 등에 업고 팔공산(八公山) 전투에서 공(功)을 세운 유부(有富)와 그의 아들 기남(起南)·난생(蘭生) 형제는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순절하여 준걸(俊傑 ; 선조 때의 공신), 득성(得誠)·영길(永吉 : 선전관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 부자(父子)와 함께 이름을 날렸으며, 진행(鎭行)은 효행(孝行)으로 정표(旌表)를 받아 충(忠)과 효(孝)의 전통을 이어온 명문(名門) 김녕 김씨(金寧金氏)를 더욱 빛냈다.
항렬표(行列表)
영돈령공(준)파<領敦寧公(遵)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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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공(문기)파<忠毅公(文起)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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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列字
용·광
溶·洸
권·모·주
權·模·柱
형·병·현
炯·炳·炫
규·기·배
圭·基·培
진·종·련
鎭·鍾·鍊
연·수·태
淵·洙·泰
정·동·병
楨·東·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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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섭·열
燁·燮·烈
채·재·지
埰·在·祉
현·호·건
鉉·鎬·鍵
준·영·호
浚·泳·浩
병·근·승
柄·根·相
환·희·희
煥·熺·熙
준·곤·균
埈·坤·均
동·용·옥
銅·鏞·鈺
한·락·영
漢·洛·永
대사성공(지)파<大司成公(智)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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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列字
홍·익
洪·翼
병·주
秉·柱


흠·선
欽·鐥
우·영
雨·永
휴·표
休·杓
훈·희
勳·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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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곤
均·坤
호·련
鎬·鍊
연·수
淵·洙
래·상
來·相
현·섭
炫·燮
노·재
老·載
용·련
鎔·鍊
영·용
永·溶
도순찰사공(문제)파<都巡察使公(文齊)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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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화군(인찬)파<益和君(仁贊)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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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목사공(형)파<晋州牧使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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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간공(경의)파<忠簡公(敬義)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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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공(준영)파<忠貞公(俊榮)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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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환
燮·煥
철·기
喆·基
종·호
鍾·鎬
수·순
洙·淳
식·동
植·東
형·남
炯·南
배·균
培·均
용·석
鎔·錫
호·연
浩·淵
영·주
營·柱
충경공(경세)파<忠敬公(景世)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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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은공(길상)파<晩隱公(吉祥)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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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공(문희)파<尙書公(文熙)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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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공(질)파<松菴公(秩)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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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랑공(구야)파<宣敎郞公(求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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