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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김씨와 가장 가까운 혈족-청도 김씨 Family trees(족보)

청도김씨(淸道金氏)
청도김씨의 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의 7세손이며 고려 때 시중을 지낸 김여흥의 셋째 아들이다.-신라김씨35세손이며 첫째분이 淑興(숙흥)어르신.둘째분이 敍興(서흥)어르신,셋째분이 청도 김씨시조의 金之岱(김지대) 어르신의 아버님이신 余興(여흥)어르신이고(이상은 수원김씨 분들이죠) 넷째분이 우리 김녕김씨의 관조이신 金時興(김시흥)(이 때부터 수원김씨에서 김녕김씨로 분파되어 나왔음) 어르신입니다-
그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의 난이 일어나자 조충을 따라 출정한 뒤 개선하였다. 후에 청도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청도를 본관으로 삼았다. 청도김씨 후손들은 시조 김지대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남긴 "충효쌍수(忠孝雙手)"를 가훈으로 삼고 있다. 충혜왕 때 대호군으로 조적의 반란을 평정한 김장선은 청도김씨 가문의 인물이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조선순조-고종)는 청도김씨가 낳은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생전의 가계나 내력, 심지어는 출생한 해와 죽은 해까지도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는 일찍부터 실용적이고 정밀한 지도제작에 뜻을 두고 30여년간 전국을 답사했다. 마침내 청구도(靑邱圖)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우리 문화사상 불멸의 업적을 남긴다.
그의 대동여지도는 현대과학을 이용한 실측지도가 나오기 전의 가장 실용적이고 정밀한 지도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군용지도로 사용할 정도였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손수 그려서 판각하여 이를 흥선대원군에게 바쳤다. 그러나 지도의 정밀함에 놀란 조정의 대신들은 나라의 기밀을 누설한다는 죄목으로 그를 투옥시킨다. 그는 결국 옥중에서 일생을 마친다. 청도김씨는 경남 밀양시 청도면 일대가 집성촌이다. 지금도 1천여 가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후손 김백일이 연산군의 폭정 때 낙향한 뒤 텃밭을 이룬 것이다. 이곳 두곡리에 있는 쌍수당은 시조 김지대를 기리는 재실이다. 2000년 현재 75,567명이 있다. 주요파는 ▲낙산파 ▲의산파 ▲차산파 ▲경손파 ▲상주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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