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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寧金氏(김녕김씨) 직계조인 新羅金氏(신라금씨)35세- 넷째 金時興 (김시흥)-김녕김씨의 중시조이자 일세조어르신 한국 김녕 인물사

원 제목: 金寧金氏(김녕김씨) 직계조인 新羅金氏(신라금씨)35세- 넷째 金時興 (김시흥)관조분편
-35세 넷째 金時興 (김시흥) -김녕김씨 관조-.
(김녕김씨 1대 시작 (김녕김씨 시조)---첫째숙흥.둘째서흥.셋째여흥.넷째 시흥(金寧金氏 貫祖(김녕김씨 관조). 諱(휘)文烈.敬順王(경순왕)의 8代孫(대손)이며 大輔公(대보공)의35代孫(대손)이다.隨城君(수성군) 諱稟言(품언)의 玄孫(현손)이요 中書令文政公(중서령문정공) 諱順輔(휘 순보)의 曾孫(증손)이며 司正公鳳麒(사정공봉기)의 넷째아드님이시다.
삼가 살피보건데 1624년에 편집 天啓甲子譜(천계갑자보)에 의하면 公(공)은 高麗仁宗(고려인종)때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翰林園(한림원)을 거쳐 兵部侍郞東北面兵馬使(병부시랑동북면병마사)에 이르셨다.
1135년(仁宗 13年 乙卯(인종 13년 을묘)) 妙淸(묘청-스님),趙匡(조광)등이 西京(서경-평양)에서 亂(난)을 일르키자 金富軾(김부식)과 함께 妙淸의 亂을 平定(평정)하신 功(공)으로 衛士 功臣(위사공신)이 되시어 政堂文學光祿大夫平章事(정당문학광록대부평장사)에 이르셨으며.金州郡(금주군-지금의 김해 평야,金寧이金海가된 이유)에 勳封(훈봉)되시었다.
그후 또 3年間(년간)이나 계속되어온 國難(국난)을 平定(평정)하신후 功(공)으로 食邑(식읍)을 1千戶(천호) 하고 上洛君(상락군-지금의 尙州)로 移封(이봉)되시었다고 記錄(기록) 되어 있다.
墓는 開城 松嶽山(개성송악산)에 있다고 전해오나 失傳(실전).
配(배):府夫人開城王氏(부 부인개성왕씨),墓 失傳 (묘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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