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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백촌 공파가 정체성에 빠지다.-종통싸움에 패해 경주김씨에 간 김녕 Family trees(족보)

원 제목: 경주 백촌 공파가 정체성에 빠지다.-종통싸움에 패해 경주김씨에 간 김녕후손
경주김씨 백촌공파

석동에는 김씨들이 네 가구 살았답니다.
첫 번째 집에 살던 김씨는 이웃마을 인 원당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요.
마을 골목 끝에 살던 김씨를 찾았지만 왠 일인지 석동이 아니라
원당 이라고 끝가지 우기더군요.
그러면서 두 번째 집의 김씨는 일본에 살면서 연락이 안 된다는 군요.
세 번째 집의 김씨도 찾았습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군산에 친척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작고한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합디다.
내가 그때서야 알았죠.
군산 친척이라고 찾아왔던 분이란 것을.
노인들이 그러더군요.
원당으로 이사간 김씨가 처음에는 김해 김씨라고 하였는데 그 조카가
김녕 김씨로 하자고 졸라서 김녕 김씨로 바꿨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다시 경주 김씨로 바꾸면서 종손이라고 한답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유언에 의하면 골목 끝에 있는 네 번째의 김씨가
할아버지와 가깝다고 하였죠.
네 번째 김씨 역시 이미 작고하였고, 그분 아들인데 칠십이 다 된다고 합니다.
모전 마을 앞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잔디 손질이 되어있어 앞집에 물어보니
부산 사는 사람이 하였답디다.
전화번호를 알아 가지고 연락을 하였더니 만나자고 하여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분 말고 또 한 분을 만나야 하기에 내려간 것이죠.
둔동을 찾아 가보았지만 그분은 이미 작고하였고,
부산에 친척이 그 당시에 조치원을 갔다왔다고 그 분을 만나보라고 하여서입니다.
조치원보를 만든 그분은 대학교 강사가 아니라 부산에서 서당을 하였고 합디다.
자기도 조치원에 갔었지만 나의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고 합디다.
그러면서 집안어른들이 모동의 통정대부 묘를 벌초 한 적은 있다고 들었답니다.
이분은 물론 내가 만나본 분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족보 이야기입디다.
내가 족보 때문에 모동을 찾고 있는 줄 알고 있더군요.
족보가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습니다.
이분도 역시 그 러더군요 김녕김씨 충의공파로 하던지 경주김씨 백촌공파로 가던지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합디다.
허 어 참 그놈의 족보가 무언지.
이윽고 만난 모동의 김씨는 만나자마자 자기가 경주의 어느 왕릉에 능 참봉인가요
뭐 그런 것에 됐다고 자랑합디다.
그리고는 집에 올라 갈 때 반드시 대구에 있는 분을 만나야 한다고 합디다.
내 앞에서 대구에 전화를 넣더니 손님 한 분이 찾아 갈 것이라고 합디다.
내가 반드시 만나볼 분은 고교 교장을 은퇴하고 백촌공파들이 처음 족보를 만들 때의
편찬위원장이라고 하네요.
동대구에 있는 그분의 집에서 만났습니다.
자기가 처음 만들었지마는 두 번째 만들 때에는 참여하지를 않았답니다.
말들도 많고 아무나 무슨 한자로 된 쪽지 한 장이라도 가져오면 족보에 올렸다고 합니다. 만든 족보를 보내와서 살펴보니 엉터리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네 얘기는 맞는 말이지만 세상사람들은 구전을 믿지 않는다고 합디다.
아니 누가 믿어달라고 이 고생을 하고 다니는 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인쇄된 글자를 믿지 구전은 믿지 않는다면서 인쇄된 문서가 없느냐고
자꾸 묻더군요.
우리 할아버지들은 절대로 문서를 만들지도 않았고,
손자를 데리고 할아버지 무덤으로 가서 입으로 유훈을 알려주셨고,
할아버지들이 조상 대대로 왜 이곳에서 살고있는지를 문서가 아닌 말로 가르쳐왔고,
조상이 누구인지 자식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누가 알아달라고 말을 하였나요,
믿어달라고 말 한 적이 있나요.
그래 나는 불학무식해서 문서나 책 같은 것 물려받은 것 일절 없다 됐냐.
그리고 왜 김씨 타령들 하시나,
충의 공은 무어고 백촌 공은 또 뭐여.
나는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조상 님들의 무덤을 찾을 뿐입니다 하자
종손을 만든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일 순위가 부산 김씨인데 자기는 사양한다고 하여 원당의 김씨로 정했답니다.
그러나 자기는 관여하지 않아 다고 하네요, 어째 듣기가 한발 빼는 것 같습디다.
내가 족보들을 보자고 하니 지금은 없고 계보를 만들었다고 합디다.
상자 속에 두루 마리 종이가 여러 개 있습디다.
그래프 용지를 반으로 잘라서 여러 장 붙여 놓은 것인데 요,
펴 보이자 이름들만 죽 적혀 있더군요.
한 두루 마리가 족보 한 질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더군요.
댓글-
정복자칸 우리 김녕김씨와 경주 백촌 공파는 같은 후손 입니다.세조때 백촌 조부가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할때 후손이 잠적했다가 충신되니까 서로가 백촌 조부가 자기 것이라고 하여,결국은 경주백촌과 우리 김녕김씨가 맞붙어 첨에 경ㅂ주백촌이 이기고 뒤에 우리가 이겨 우리가정통이되고 그때 떨어져나가 경주에 붙은 것이 경주백촌공파이지요,큭,그러니 정체성문제가 경주백촌파에 있는것이죠.위의 제 블러그와 카페 소개하니 돌려봐요,종통 싸움에 패아여 떨어져나간 후손이 어찌 경주김씨에 들어갔느지.뭐 우리김녕도 김녕되기전에 경주김씨로 썼으니.분성김씨는 나중에도 김녕으로 들어 왔으니 들어와요.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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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3345 2016/10/14 00:10 # 삭제 답글

    백촌 김문기 할아버지 후손이자 경주김씨 백촌공파입니다. 다시, 이긴 시기를 잘 참고하시고 누대에 걸쳐 인정된 종통 맥이 법적인 판단에 어찌 조상의 정통성을 부정할 수 있는가, 당시 후손들이 힘이부쳐서 그러했지만 여전히 종통은 변할 수가 없어요.
  • 3398 2016/10/14 00:29 # 삭제 답글

    제목을 보니 오해를 많이 하고 계십니다. 경주김씨 백촌공파는 종통 싸움에 져 경주김씨에 간 것이 아니라 본래경주김씨 백촌공파로 자리하고 존재하고 파조였고 김녕김씨와는 무관하였습니다. 지금처럼의 경우가 된 이유의 먼저는 경주김씨 백촌공파 대동보에서 제외된 김녕김씨라고 하는 분들의 원인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대에 걸쳐 경주김씨 본산에서 인정된 조상의 정체성을 어불성설의 법적 논쟁으로 잃어버린 백촌공파 후손들은 늘 가슴 속에 멸문지화 마음으로 살고 있음을 아세요. 분명 다시 이 명예를 회복 하겠지만, 문기할아버지 당시 단종복위 후 사육신의 역적이된 자손들이 숨어지냈는데 자식들이 그렇게 많이 있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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