鷄林寶緖 上洛眞源 簪纓相襲 基麗寔繁 忠孝之家 道義之門 積仁累
계림보서 상낙진원 잠영상습 기려식번 충효지가 도의지문 적인루
蔭 垂裕後昆 思先恩重而不忘 其於警勵貿俗晉施德化之道 其效不少
음 수유후곤 사선은중이불망 기어경려무속진시덕화지도 기효불소
立人之道曰 仁與義 大夫以之其心不貳 以仁能殺身 以義能殉君 爲
입인지도왈 인여의 대부이지기심불이 이인능살신 이의능순군 위
盡人道 見義 擲鴻毛而重泰山
진인도 견의 척홍모이중태산
- 於白村實記及金寧金氏族譜-
어백촌실기급김녕김씨족보
신라의 위대한 서업은 상낙(경북상주)이 참근원이요 대대로 양반집안으로 이어온 그빛이
오늘의 번창을 이루었도다. 충효의 집안이요 도덕과 의리를 지키는 문중으로 어진일 많이
쌓아 그 음덕을 후손들에게 넉넉히 물려주노니 선조의 은혜가 무거움을 생각하고 잊지 말
고 세속을 깨우치고 장려하여 덕화의 도리를 베풀면 그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인의라고 말하고 대부들은 이로써 그 마음이 둘이 아니고 인은 능히
살신하고 의는 능히 순군하게 되면 인도를 다한다 할 것이다.
의를 보면 칠척의 육신을 가벼히하며 생명을 홍모같이 버리고 의리를 태산같이 무겁게하라,
<김녕김씨 족보에서>
* 지은이 : 김 문 기 (金 文 起) 1399년 ~ 1456년(세조2년) 졸 자는 여 공(汝 恭) 호는 백 촌(白 村)
◎ 서기 1426년 (세종8년) 식년문과에 급제 검열, 정언, 함길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에 까지이르렀다.
1456년 (세조2년) 단종 복위의 모의에 가담, 붙잡혀 고문에 굴복하지 않다가 이개(李塏)등과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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