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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이 아니라 '사칠신' 아닌가요? -사육신에 대한 궁금증? Family trees(족보)

[오마이뉴스 유혜준 기자]

사육신공원 입구
ⓒ 유혜준
아홉살 때부터 노량진에서 산 기간을 따지니 얼추 30년이 다 되어 간다. 결혼해 군포에서 사는 동안 노량진에 있는 친정에 들락거린 기간까지 따지면 나와 노량진의 인연은 40년이다. 참 오랜 세월동안 노량진과 인연을 맺고 살았다.
그런데도 노량진을 잘 모른다. 다람쥐 쳇바퀴 돈다는 말을 이럴 때 비유해야 옳은 건 모르지만 늘 가던 길만 다닌 탓이 크다. 가끔 동네를 한 바퀴 돈다고 산책을 나가긴 했지만 그 역시 늘 가던 길만 휭 하니 돌았으니, 노량진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지난 1월에 노량진 이쪽에서 노량진 저쪽으로 이사를 한 뒤 출·퇴근길에 변화가 생겼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사육신 공원' 앞을 지나다니게 된 것이다. 지나치면서 보니 '사육신 공원'에 봄꽃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해서 '한 번쯤 나들이 삼아 가볼까'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노량진에 살면서 '사육신 공원'에 몇 번이나 가봤나 손가락을 꼽았더니 한 손으로 세고도 남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한두 번 가봤을 것이고, 결혼 뒤에 한두 번 간 것 외에는 간 기억이 도무지 없다. 이렇게 내가 사는 동네에 관심이 없어서야, 하면서도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건만 직장에 다니다보니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노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해서 지난 주말, 카메라를 들고 '사육신 공원'을 찾았다. 공원 산책도 하고 나처럼 동네공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원도 소개할 겸해서.
사육신 공원에 묘지가 일곱 개인 까닭은?
 
                                                      ▲ 사육신 사당 의절사
                                                                           ⓒ 유혜준
 
'사육신 공원'은 묘지공원이다. 공원 안에 묘지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사육신 공원'은 '사육신 묘지'라고 불렸다. 사육신의 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으리라. 1978년에 공원이 된 것으로 기억된다. 묘지는 전부 7개. 그 중 넷이 진짜 묘이고, 셋은 허묘(虛墓)라고 한다.
사육신인데, 묘지가 7개라니 이상하지 않나? 사육신으로 일컬어지던 분들은 박팽년, 하위지,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 이렇게 여섯 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유응부 대신 김문기를 넣어야 한다는 김녕 김씨의 주장으로 한 때 기계 유씨와 김녕 김씨 간에 분쟁이 있어 누굴 넣고 누굴 뺄 수 없어 한 분을 더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공원 이름을 '사칠신'으로 개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공원 이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육신'으로 변함이 없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렇다고 공원을 가득 메울 정도는 아니고 그럭저럭 한적함을 느낄 정도다. 일곱 분의 위패를 모신 사육신 사당 의절사(義節祠)에는 참배객이 있어 은은한 향내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방명록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유응부와 이개의 묘지. 그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이 보인다.
ⓒ 유혜준
의절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쪽문이 나온다. 그곳에서 문을 차지한 채 젊은 처자 둘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문을 지나 위쪽을 올려다보니 묘지가 보인다. 묘지와 묘지 사이에 한 남자가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다. 이개와 유응부의 묘지다.
묘지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는 남자,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다른 묘지 한켠에서도 한 남자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젊은 연인이 묘지 옆에 사이좋게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묘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다 보니 젊은 처자 둘이 나란히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한기가 느껴지는지 무릎 담요를 어깨에 둘렀다.
노량진이 유명한 학원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묘지 곁에서 수험공부라니…. 조용한 곳을 찾은 것이라면 아주 잘 찾아왔다는 감탄마저 나온다. 지나면서 흘끔거리는 사람들만 없다면 금상첨화겠다.
묘지 옆에서 공부를?


사육신 공원 안의 운동기구
ⓒ 유혜준
'사육신 공원'에 묘지만 있는 건 아니다. 한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고, 운동기구도 갖춰져 있다. 운동 삼아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다. 중년을 훌쩍 넘긴 여성이 분홍빛 계열의 운동복을 입고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열심히 걷고 있었다. 아, 여기에 와서 운동을 해도 되겠구나, 깨닫는다.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한강대교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 보였고, 한강 주변 경관이 아주 잘 보였다. 밤에 이곳에서 야경을 보면 아주 볼만하겠다. 한밤중에 야경을 보러 한 번 와볼까?
조성된 지 오래인 공원이라 그런지 나무와 꽃이 잘 가꿔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졌고, 개나리는 꽃보다 잎이 더 무성해져 있었다. 연한 녹색을 띠고 있는 나뭇잎들이 마음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줬다. '사육신 공원'에도 봄이 깊어가는 중이었다.
노량진이나 노량진 인근에 사는 분들이라면 멀리 봄나들이 갈 것 없이 가벼운 발걸음을 '사육신 공원'으로 옮겨도 좋을 듯 하다. 봄꽃도 보고, 역사 속의 인물 사육신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사육신 공원은?

조선 제 6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을 모신 곳이다. 단종 3년 음력 윤 6월(1455),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즉위하매 이에 의분을 품은 충신들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탄로되어 참혹한 최후를 마치니 이들을 훗날 사육신이라 부르고 있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 7년(1681) 이 산 기슭에 민절서원을 세웠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전해오다가, 1955년 5월에 육각의 사육신비를 세웠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이 의로운 충혼들을 위로하고 불굴의 충의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3240편이었던 묘역을 9370평으로 확정하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不二門), 홍살물, 비각을 새로 지어 충효사상의 실천도장으로 정화하였다.
본래 이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그후 하위지, 유성원, 김문지의 허묘도 함께 추봉하였다. - 공원의 설명에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문고리
ⓒ 유혜준


의절사 안의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 유혜준


사육신공원의 유래
ⓒ 유혜준


사육신공원 담장길. 담쟁이 넝쿨이 보기 좋다.
ⓒ 유혜준
사육신 공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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