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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濂(김렴)을 시조한 김해김씨(金海金氏),金春(김춘)을 시조로 한 金海金氏法興派(김해김씨법흥파) Family trees(족보)

원 제목: 金濂(김렴)을 시조한 김해김씨(金海金氏),金春(김춘)을 시조로 한 金海金氏<法興派>
김해김씨(金海金氏<法興派>)-또 다른 金寧金氏後裔(김녕김씨후예)-

우리나라 김씨를 대별해서 신라계와 가락계로 구분한다.
신라계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계를 지칭하고 가락계란 가락국의 시조왕 김수로왕(金首露王)의 계통과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귀화하여 김씨로 사성받은 김충선(金忠善)계를 말한다. 그러나 예외로 신라계 김씨 중에서 김해로 관적한 계통이 있어 수로왕계의 김해김씨를 선김(先金), 알지계의 김해김씨를 후김(後金)이라 하여 구분하고 있다.
후김은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의 셋째아들(《신라김씨분파연원도》에는 은열의 증손으로 되어 있음) 김렴(金濂)이 고려조에서 봉어(奉御)를 지내고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김렴을 시조로, 본관을 김해로 하여 경주김씨에서 분적하였다.
그 후 고려 인종 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을 중조로 하여 본관을 김녕으로 하였다. 그러나 김녕은 김해의 고호이므로 선김·후김의 구분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외에 김춘(金春)을 1세조로 하는 법흥파(法興派)라는 또 하나의 후김계가 있다.
1세조 김춘은 김시흥의 8대손이요,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8촌 동생이다
. 김문기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복,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회책하다가 처형되고 3족을 멸하는 위난을 당하게 되자 당시 김해군수인 김춘이 황해도 풍천으로 피신했다가 1471년(성종2) 다시 평안도 용천군 동하면 법흥동으로 옮겨 세거지를 마련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입향 1세조로 하고 본관을 법흥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1세조의 묘소는 실전되고 평북 용천군 동상면 덕향산에 설단 제향하였으나 남북이 분단된 오늘날 내왕이 막혀 근황을 알 수 없다.
법흥김씨는 비록 연조는 짧지만 후손이 크게 번성하였고, 많은 인물이 벼슬길에 올라 당하관(堂下官)의 문관 39명, 진사 9명, 무관 20명을 배출했다. 특히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국난을 당하여 무용으로 공을 세운 사람이 많다.
김덕순(金德純)은 무과에 급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충무위부 장군이 되었고, 정묘호란 때도 의병장으로 용골산성에서 전공을 세웠다.
숙종 때 병절교위에 추증, 명정되고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김종민(金宗敏) 역시 무과에 급제, 정묘호란 때 의병장으로 용골산성을 지키고 공을 세워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숙종 때 병조참판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렸으며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이 밖에 김예원(金禮源)·김여성(金汝聖)·김여례(金汝禮)·김여의(金汝義) 등이 정묘호란에 용골산성에서 전공을 세우고 관직에 올랐거나 증직을 받았다.
근세에 들어와 법흥김씨를 빛낸 사람은 군인·정치가로 유명한 김홍일(金弘壹) 장군이다. 그는 1918년 상해로 망명, 항일전에 참가하여 일본군 34·106사단을 궤멸시키는 군공을 세웠고, 중국 육군 중장과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육군 사관학교장을 지내고 예편, 외무장관·국회의원·국정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이외에 김진태(金振兌)·김봉문(金鳳文)·김창건(金昌健)·김태주(金泰周)·김태원(金泰元)·김병원(金秉元) 등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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