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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한 많은 저 문경 새재 이 어찌 할꼬~~~!!! 기타

문경새재

글/동영상 : 오주여(컬러풀대구뉴스 사이버기자)imnews472@hanmail.net
편집 : 컬러풀대구뉴스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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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입니다

문경새재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이였습니다. 지금이야 기차나 자동차등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이 재를 꼭 넘어 서울에 갈 일이 없지만 옛날에 과거보러 한양 가던 선비에게는 이 재가 얼마나 힘든 길이었으면 새도 쉬어 넘는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한양가는 선비의 마음도 느껴보고 옛 군사 요충지의 전경도 맛보고 산세가 깊은 만큼 맑고 깨끗한 계곡물도 보면서 문경새재를 한 고개 한 고개 넘어가 볼까요?

문경새재는 세 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 개의 관문은 각각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조곡관), 제3관문(조령관)이랍니다. 높고 험준한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군사상의 요충지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이 세 관문은 임진왜란 뒤에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 거리는 3km, 제2관문에서 제 3관문까지는 약 5km정도 된다고 합니다.

※ 관광코스 : 제1관문-제2관문-제3관문-제2관문-제1관문(13km, 4:30소요)(왕복)

제1관문(주흘관) :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제2관문(조곡관) :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이라고도 한다.
제3관문(조령관) :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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